보통 10년 이상 같은 일에 종사하면 전문가에 준하는 자격을 부여한다. 그리고 같은 일에 10년이나 종사했음을 대단하게 생각한다.
내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들과 함께 생활한 기간을 따지면 사람관계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거늘.. 사람과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어떤것이 옳은것인지 바른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 6개월간 회사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참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갑(甲)과 을(乙)의 관계였다. 갑과 을의 관계는 인관관계가 아닌, 사무적인 관계인데.. 갑과 을의 관계라는 이유로 부당함을 느낀 적이 많았다.
보통 갑과 을은 계약서 작성할 때
"○○○회사(이하 '갑'이라 칭함)는 △△△회사(이하 '을'이라 칭함)에 xxx제품의 제조하도록 위탁업체로 어쩌구저쩌구~~"
뭐 그런 내용을 적을 때 나타나는 명칭이다. '○○○회사', '△△△회사'를 계속 적기 번거롭기도 하고 가독성의 문제도 있고.. 뭐 그런 저런 여러가지 이유로, 짧게 '갑', '을'이라 하겠다~ 이런식으로 하는 거다.
그런데, 이 갑과 을이 그냥 쉽게 쓴다고 쓰긴 했지만...
주로, 계약의 절대적인 위치에서 주도권을 가진 곳(또는 사람)을 '갑'이라 칭하고, '갑'의 결정에 따라 계약을 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약자라 볼 수 있는 곳을 '을'로 칭한다.
뭐, 물론 계약서 작성에 많은 계약인이나 기업이 들어가서 '갑','을','병','정','무'~~~~~ 하고 쭉 나오게 되면 을도 주도권을 가진 강자 측면일 때도 있다.
그래도 보통의 경우, 을은 갑에 비해 약자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을'이 주로 되는 기업에 다닌 나로서는 '더러우면 니가 '갑'해라' 라는 얘기를 농담으로 듣고 다녔다.
세상 살다보면 내가 '갑'이 되는 경우도 있고 내가 '을'이 되는 경우도 있다. 공학도인 나로서는 '갑'이 되는 경우는 1%도 안되고 '을'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을'의 서러움을 잘 아는 편이다.
그래도 난!! '을'이라도 필요하다면 '갑'에게 요청도 하고, '갑'의 요청이 억지라면 항의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다. 물론 지금도..
그리고 내가 '갑'이라면 안 저럴 텐데...... 라고 많이 생각했다.
그런데, 가끔 내가 '갑'의 입장이 되었을 때, 나도 그 융통성없고 주도권을 가졌다하여 괜한 투정을 부리는 갑이 되는 것 같아 내 모습에 내가 놀란다.
살다보면, 꼭 계약상의 '갑', '을'이 아니더라도, 갑과 을의 관계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더러 생긴다.
자신이 갑이 되든, 을이 되든 옳은 판단을 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그 알량한 주도권도 힘이라고 갑이 되면 달라지게 된다.
요즘 연일 보도되는 연예인 성상납 비리 얘기가 터져나올 때 마다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는데..
이런 것도 갑의 힘을 과시한게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나도 누군가처럼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그런 비겁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괜한 일에 화내고 보니 내 마음이 더 불편하네.. 에효.... -_-;;;
'나의 이야기/끄적끄적'에 해당되는 글 22건
"나라면 그렇게 안했을 꺼야.."
"입장바꿔 생각 해봐."
"아무리 생각 해봐도...."
난 그러한 말들이 참~ 싫다. 뻔한 변명 같아서...
그런데, 문제는 그런 말들을 나도 자주 한다는 거다.
최근들어
"나라면 그렇게 안했을꺼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되", "나라면.. 그래, 나라면 처음부터 안그랬겠지." 란 말을 엄청 해댔다.
나라면.... 나라면... 그 상황에서의 나였다면..
그런데, 그 상황의 나였다면.. 그건 또,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그 사람의 딱 그상황 그 심경, 그 장소가 아니었으니..
내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수 있는것도 아니고, 그 사람 스스로도 인지못한 내면의 문제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찌 내가 감히, 그 사람 상황에 나를 대입해 생각해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사람은 착각의 동물이기에, 생각을 하기에, 그래서 오만하고,
난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지금 이 순간에도, 함부로, 감히, "나라면..."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 '나라면...' 이라는것.. 그 사람도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나라면.. 그 사람처럼 소심하게 안그럴꺼야.. 나라면 그 사람처럼 나에게 함부로 날 이해하는 척 하지 않겠지.. 라고 하면서..
난, 그 때의 그 사람이 될 수 없으므로, 그 사람을 온전히 다 이해하거나, 입장바꿔 생각해볼 수 없다.
내 입장을 개입한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할 뿐이다.
결국엔, 늘 문제도 나. 답도 나다.
내가 이해하는 만큼, 내가 생각하는 만큼, 딱 그만큼 그 사람을 보게 된다.
알면서도 그게 안된다. 이것 역시 안다는 착각인걸까....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실제론 그리스 신화에서의 "Dwarfs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라는 말에서 유래됬고..
아이작 뉴턴이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17세기 이후 뉴턴에 의해 유명해지고, 많이 쓰인 말이라는데, 뭐 어쨌든..
more..
얼마전부터 네이트온 대화명을 저걸(거인의...)로 해 놓으니,
많은 이들이..
거인이 어딨는지? 나도 거인의 어깨에 같이 올라타 보자.
거인이 롯데냐? 등의 쌩뚱맞은 질문을 포함해 많은 질문들을 해댔다.
그래서 난..
거인의 어깨는 자신만의 지향점이라고.. 함께 할 수 없는 개개인 만의 그곳이라 대답하곤 했다.
(뭐 물론 개개인이 받아들이기에 따라 다른 말이 되겠지만, 내 해석으론 그렇다..)
그런데, 사실.. 거인이 어딨는지, 거인을 발견하긴 한건지 조차 모르겠다.
오늘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친 한 교수님께서, 그냥 지나가는 말로 "열심히 하고 있나?" 라고 하셨다.
그냥 웃음으로 대답했지만.. 그냥 좀.. 대답하기 곤란한 느낌이 들었다.
뒤늦게 서두르는게 싫어서, 먼저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래서 난 늘 조급하다. 조급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바로 지난 학기, 공학 수학 수업을 하고, 이번엔 꽤나 학점을 후하게 줬다. 열심히 한걸 아니깐, 수학이란게.. 쉽지만은 아닌 학문인 걸 아니깐.. 나 또한 늘 어려우니깐.
그런데, 아무리 후하게 줘도 학점이 불만인 학생은 꼭 있다.
한 학생이 전화와서, 이런 저런 변명 아닌 변명을 했었다. 장황하고 길고, 두서없고, 간절한..
이래도 저래도 안되는지.. 나이를 들먹이며, '뒤늦게 수학하느라 힘들었다'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했다' 라는 말을 했다. 참으로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지금도 하는데..-_-;;;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니깐 그렇죠. 정말 열심히 했어야죠. 남들이 봐도 열심히 했어야 열심히 한겁니다.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하는게 아니라.."
라고 말해줬다. (상처받았을래나... -_-;;;;;)
그러고 보니 그 얘기들은 내가 내게 한 말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니깐 그렇지! 정말 열심히 했어야지...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하는게 아니라, 남들이 봐도 열심히 했어야 열심히 한거야!!"
방학 다 지나간다..-_-;;;;; 컨퍼런스 한 편쓰고 말꺼냐?! -_-;;;;;;;;;;;;;;;
믿음..
믿음은 아무에게나 오는 것도, 아무에게나 해버리는 것도 아니다. 무턱대고 아무나 믿어대다가는, 요즘같이 험한 세상에.., 각종 사기에 시달려 만신창이가 되어버릴게 뻔하다.
누군가 나를 전적으로 믿는다는건 아주 기분좋은 일이다. 또한, 누군가 나를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는건.. 아주 슬픈 일이다.
그 믿음이 나로 인해, 주어졌든, 나로 인해 소멸해 버렸든 말이다.
믿음.. 이라고 하면 흔히들 종교적 색채가 강한 느낌이 들어버리고 만다..(나만 그렇다고 보는가..-_-;;)
암튼.. 그런데, 믿음이란 건 종교적이건 사람간의 믿음이건, 기업간의 사업적 믿음이건 살아가면서 꼭 필요하고 중요한거다.
그 수많이 믿음 중, 가장 중요하고, 또한 그래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기자신의 믿음이 아닐까..?
아무도 나에 대한 믿음이 없는 극적인 순간까지도 나를 믿어줄 수 있는건 나 밖에 없지 않을까?
설령 그 믿음이 어이없는 것일지라도 나는 날 믿어야하지 않을까..
내가 나를 믿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날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얼마전 읽었던 "밀리언달러 티켓"이란 책이 생각난다. 리뷰를 쓰다가, 이런저런 핑계로 아직까지도 미루게 된 책인데.., "I BELIEVE"를 중요한 인생목표로 하여 I BELIEVE..8가지 알파벳으로 8가지의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었던 백만장자 이야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전체 키워드인 I BELIEVE.. 내가 나를 믿는 것이 아닐까..
어릴 적 들었던.. 유행가사마냥..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내 컴퓨터에 있는 I BELIEVE를 검색해봤다. 음악과 영화파일만 있는 폴더를 검색했더니.. 34개의 음악파일과 2개의 폴더, 한개의 텍스트 파일이 검색되었다. 총 37개의 I Believe..
컴퓨터에서 검색된 저 믿음꾸러미들처럼.. 수많은 믿음들이 검색만 하면 툭!하고 튀어나와준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믿음은 그런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리 간단한 거라면.. 그렇게 소중하지도 않을테지.. 사실.. 그냥 이런 저런 마음에 뜻없이 써버린 포스팅이라.. 결론 맺기가 쉽지가 않다.
그냥.. 믿어볼란다. 열심히 마음 다해 믿어볼란다.
생각해보니.. 어젠 참으로 즐거운 하루였던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들..
그들과 함께한지도 벌써.. 7년째다..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어제 함께 있었던 은정, 병열이오빠, 우승선배, 태윤선배, 태식선배, 그리고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성일선배 등 몇몇 선배들..그리고 요즘 뜸한 현정이,유진이,혜정이까지.. 그들과 함께라는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나를 기쁘게 하는 사람들..
그동안 차를 핑계삼아.. 금주를 해왔다. 몸에도 잘 받지 않을 뿐더러.. 술을 마시고 한없이 감상적으로 변할 내 모습이 싫어 술을 마시지 않고 지냈다.
어젠 병열이오빠에게 차를 맡기고 소주를 조금 마셨다. 내친김에 노래방도 가고, 차 때문에 술을 못마신 사람들을 위해 볼링장에 이어 당구장엘 갔다. 승부야 물론~ 우리 팀이 이겼지만.. 승부를 떠나 참으로 오랜만에 크게 즐거웠던 하루였다.
아쉽게도 칠공이가 없어 똑딱이 P9로 찍었다..
다들 자기 일에 바빠 다같이 여행 한 번 하기도 힘들어, 모두 함께한 사진도 없다.
물론.. 언제부턴가.. 추억이라고 믿었던 사진들이, 슬픔으로 바뀌고 아픔으로 기록된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사진을 찍기도 찍히기도 두려워졌었다. 뭔가 거창한 사진도 아니고, 쉽게 찍고 쉽게 지우는 디지털 사진일지라도.. 그런데 이젠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가끔은 이 말이 더 정겹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니까..
언제부턴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가 참으로 힘들었는데..
이젠.. 그대로 지속된 모든 것이 더욱 부담스럽고.. 힘들다.
틀에 박혀버린 나란 사람. 나란 틀에 갇혀버린, 거기서 굳어버린 나란 사람..
'나'라는 깊은 함정에 빠져버린 나..
사람에게도 리셋키가 있다면..
지워지게 될 많은 것들이 두렵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처음뵙겠습니다.. 반가워요.. 저란 사람은 말이죠..
...........
%$#&@#*^%$!&....
그래서인지 학교정문에선 장애우의 날 기념행사(?)까지 열렸다.
신문에선 특정연예인이 장애우의 날을 맞아 장애학교를 방문했다는 기사를 보도했으며, 평소엔 안그러다가 이런 날만 찾는다는 내용의 리플들도 많이 보였다.
이런류의 기사들은 연말이나 명절에도 많이 나오곤 하는데.. 그런 기사가 나올때면 또 다른 무리들은 그런 사람들은 특정한 날에라도 장애학교 방문이나 불우이웃 돕기를 하느냐는 식의 대중을 향한 질타가 쏟아지곤 한다.
둘다 맞는 말이다.
예전에 tv에서 고아원 원장의 인터뷰를 본적이 있는데, 특정한 날에만 연예인들이 대거 찾아오고 평소엔 다시 휑~한 고아원이 아이들에겐 더 적응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는 거였다.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또.. 딴 곳으로 얘기가 흘러가 버렸는데.. 내가 하고자하는 얘기는 그런건 아니고...
뒤늦게나마..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작년 가을의 나의 경험을 얘기하고자 한다..
난 그때 장애우에 관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현주소를 체험하고야 말았다.
그 당시엔 나도 많이 암울한 시기여서 이런 얘기를 할 용기가 나지 않았었는데.. 이제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2005년 9월.. 귀가하던 중 움푹 패인곳을 헛디뎌 넘어짐과 동시에 차와 헤딩을 하는 바람에.. 다치게 되어 4개월간 깁스를 하게 되었다.
석사졸업논문도 써야하고 졸업후 취업 및 진학을 결정해야하는 시점이었으므로, 내게 있어 엄청난 악재였다. 어쨌든.. 그로인해 나는 거의 누워서 지내야 했고, 그덕에 살도 많이 찌고.. 암울암울암울했다..-_-ㅋ
그러다가 졸업논문 때문에 학교에 가야할 일이 생겼다. 하필.. 내가 다리가 다쳤던 그 즈음엔 부산에서 APEC이 열리고 있었다.. 그 말은 2부제를 한단 말이다.. 하필 그날이 짝수날인지라..(물론, 당시 내겐 차가 없었고, 엄마차는 짝수번이다..) 1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에,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사는 지역은 거의 종점과 가까워서 버스는 앉아서 갈 수 있었다. 그리곤 서면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러 갔다. 지하철 타러 가는 길 내내.. 엄청난 수의 계단과 짧은 신호등 신호에 진땀흘려야 했다.
그리곤 여차 저차 하여 엄청난 시간을 들여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서면은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지점이라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그날도 그리 한가하진 않았다. 지하철을 타는데, 지하철 사이 간격이 왜그리 넓은지 평소에는 느끼지 못한 엄청난 어려움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다.. 지하철을 탈때부터 깁스한 다리가 힘겨웠던지라 약간 지체했던 것 같다. 30분을 더 가야하는거리라 어찌할까 하는 찰나에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그리곤 한발짝을 떼는데,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 내 등을 세게 밀치며 말했다.
"다리 병신이 집에나 있지 뭐할라고 나와서 사람 귀찮게 하노?"
그러더니 내 앞 빈자리에 털썩 앉는게 아닌가.. 외모만큼은 참으로 멀쩡하게 생긴 중년의 아저씨였다.. 앉을 자리가 필요했다면.. 그냥 비켜달라고 하면 됐을 것을..
그 순간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되어.. 그자리를 황급히 빠져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그리곤 구석진 부분으로 조금씩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그리곤 나는 그 다음역에서 내려서 5분간은 혼자 흐느껴 운것 같다..
일시적인.. 단 4개월간의 다리 깁스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 순간 너무 서러웠다.. 그런데 만일 내가 정말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었다면 어땠을까..
그 후 나는 깁스를 풀때까지 외출하기가 아주 꺼려졌다. 왠만해선 지하철이나 버스를 피했고..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때는 아예 기둥과 같이 의자가 없는곳으로 피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쩔수 없이 의자가 있는 곳에 서게 될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면했고, 그나마 자리를 비켜주는 사람은 나이가 지긋이 드신분들이셔서 오히려 내가 죄송스러웠다.
그리고 난 4개월간의 시간이 지난 후, 조심해야하는 기간임에도 깁스를 풀어버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그 후로, 지하철을 탈 때면 자리에 앉지 않는다. 물론 모두가 다 앉아있는 정말 한가한 지하철을 제외하곤.. 왠지 내자리가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가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지하철을 타더라도 꿈쩍도 하지 않는 젊은 사람들을 볼때면.. 내가 더 부끄러워진다.. 우리 모두가 언제나 건강하리란 법도 없다(물론 악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_-). 언제까지나 늙지 않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한 얘기는 모든 사람이 모두 장애인에게 무례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잠시나마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에 관한 현주소에 대해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혼자생각이다.
장애인에 대해, 그리고 노인분들에게.. 불우이웃에게.. 특정한 날에만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조금은 더 세세하게 작은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 부푼 마음만으로 처음이란 큰 의미를 다 채워버린다면.. 처음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고야 만다.
그걸 알면서도, 난 늘 처음에 들떠.. 그야말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들고야 만 적이 한두번이 아닌 듯하다.
맨처음 홈페이지를 만들었던 그 때를 생각해봤다.
처음으로 홈페이지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포토샵과 플래쉬까지 이용해서 이렇게..저렇게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이런저런 용도로 홈페이지가 계속 바뀌고 리뉴얼도 하고, 크고 작은 공모전에서 상도 타고.. 그러면서 홈페이지 만드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지인들의 홈페이지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컴퓨터 하드를 날리고.. 몇번의 서버이사 등등의 이유로 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홈페이지도 많지만.. 참.. 많이도 만들었다.
더보기..
홈페이지에는 내가 기뻤던 일도 적고 슬펐던 일, 힘들었던 일을 모두 함께하는 일상적인 일기장이 되었다.
처음 digital camera를 샀을때도, dslr camera를 샀을때도, 기뻐서 촛점도 맞지 않는 사진을 마구마구 올리며 기뻐했다. mp3를 샀을때도, 핸드폰을 샀을때도..
얼마전 메일이 한통왔다. 호스팅료를 내란다.. 3달여를 굳게 닫아놓았는데..
호스팅료를 내려니 왠지.. 아까운 생각이 든다.. 결국.. 모두 지우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일기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물론, 비공개 글이 더 많은 일기장이지만.. 그래도 왠지 앞으론 기쁘거나 슬픈일이 있으면 더이상 함께 할 무언가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게 아닌가..
결국엔.. 이승환의 "첫날의 약속" 이란 노래를 들으며 홈페이지를 다시 열게 되었다.
첫날의 약속..
또다시 옆길로 새고.. 주제와는 전혀 어긋난 글들을 끄적이고 있지만..
이게 다 내 모습이고.. 내 블로그인것을..
앞으론.. 바쁠땐 물론 끄적일 생각조차 못하겠지만..
내 일상을 담아놓는.. 그런 블로그로 유지할 생각이다..
나도 호영이처럼 홈페이지와 겸하여 블로그를 유지하고 싶긴 하지만..
지금은 큰 여력이 없어서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처음의 마음가짐으로 산다면.. 조금은 덜 힘들고.. 조금은 더 기쁘게 살게 되지 않을까..?!
월요일 세미나가 있건만.. 논문 반도 못봤다-_-a
역시 영어논문은 @.@ 하단 말이쥐..
출처 : bburn.net
나도 꼭 해보고 싶었어..-_-ㅋ


